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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의 운명과 저승의 운명❷
이승은 색(色)차원의 운명이고 저승은 공(空)차원의 운명
기사입력: 2020/07/25 [08:10] ㅣ 최종편집: 나눔뉴스.
노병한 칼럼니스트
▲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사주산책]<이승의 운명과 저승의 운명>에서 계속 이어짐. 세포내에 있는 유전자(DNA)는 수많은 유전정보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유전자(DNA)는 정보의 저장창고에 불과하고 필요할 때에 필요한 정보를 끄집어내어서 활용하는 것은 역시 심성장이 담당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니 말이다.

 

유전자(DNA)는 물질계에 속하는 물()이기에 물리화학적인 반응을 넘어서 초월하는 사고·사유·판단·명령은 할 수가 없다. 유전자(DNA) 자체의 분리작용이나 성장작용도 실제로는 심성장의 지시에 따라 행하여지고 있음일 것이다.

 

인체 내에 세포가 자리를 잡고 있는 부위에 따라 그 부위에 필요한 정보만 작용하고, 기타의 정보들은 모두 다 잠을 자게 하는 기능도 역시 유전자(DNA)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장의 지시에 따라서 유전자(DNA)가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심성장에 대하여 유의할 점이 있다. 대우주내의 모든 현상들은 절대시공(時空)의 규제 하에서 찰나적인 삶과 죽음인 생멸(生滅)을 반복하면서 상대시공(相對時空)을 전개하여 나가고 있기에 심성장도 하나의 현상인 이상 그 예외일 수는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므로 심성장도 찰나적으로 생멸(生滅)하면서 영속하고 있음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과거 수백만 년 동안 각 개개 인간의 심성장이 그 사람의 수명 만큼인 60·120·180년의 단위가 경과할 때마다 언제나 동시에 육체와 함께 사멸(死滅)해 완전히 소멸되어왔다면 결코 인류는 오늘날과 같이 진화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문명과 문화의 발전도 이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육체와 같은 태극(太極)의 유핵장(有核場)을 동반하고 있지 않은 심성장의 경우에도 역시 결론은 같다고 추측할 수가 있을 것이다. 만약에 각 개개의 심성장이 단 60·120·180년 미만의 수명으로서 완전히 사멸되어 소멸되는 것이라면 심성장 자체의 진화란 전혀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고(太古) ‘혼륜(渾淪)=혼돈(混沌)’의 시대에 광막한 무극(無極)의 공간에서 대우주를 탄생시킬 만큼 고도로 지능이 발달한 거대한 대우주의 대()심성장이 있을 수 있었다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추론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이 같은 대우주의 대()심성장이 최초에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우주의 소()심성장에서부터 출발해, 헤아릴 수없이 많은 수억 년의 세월을 반복해 걸쳐오면서 계속해 풍부한 정보축적을 하고 또 고도의 지능을 스스로 계발해오면서 대우주의 크기만큼 심성장이 성장하였기 때문은 아닐까?

 

결과적으로 인간이라는 소()생명체는 대우주라는 대()생명체 내에서 살고 있는 대()생명체의 분신(分身)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소()생명체의 심성장은 대우주의 대()심성장의 분신으로서 대우주자체가 사멸해 소멸할 때까지 수명을 함께 같이하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지구라는 행성이 유일한 생애의 터전이 아니라 대우주내의 여러 행성의 어느 공간에서나 생명체유지에 필요한 자연조건이 합당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새로운 기원(起源)을 이어나갈 수도 있다고 추측할 수 있음인 것이다.

 

생명체로서 개개의 인간이 자기의 육신의 자연수명을 다해 사망한 후에는 육체와 분리된 개인의 심성장다른 심성장의 무리()인 떼에 편입되어 일정기간 머물러 있다가 주위환경에 따라 훗날 다시 다른 생명체나 인간 등으로 윤회(輪廻)하며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이클의 순환과정을 불가(佛家)에서는 윤회(輪廻, Samsara)라 하고, 서양에서는 전생(前生, Transmi Gration)이라고 하고 있음이다.

 

따라서 인생은 바로 영화 속의 배우인 연기자들과 흡사하게 비유될 수 있다. 탤런트나 배우가 한때는 대통령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고 다른 때에는 평범한 장사꾼의 역할을 맡기도 하며 거지역할도 맡기도 한다. 각기 작품에 있어서 담당할 배역과 역할은 그 연기자의 연기의 기량에 대한 평가가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 있어서 죽은 후의 평가기준은 연기자의 환경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예컨대 사람이 죽은 후의 심성장은 인간 개개인이 생전에 가졌던 특별능력·기량·업적·명예·부귀영화·지위등으로 결코 평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성장의 세계에서는 오로지 의식(意識)면으로만 평가하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즉 각기 개개인 인간의 마음가짐의 선악(善惡)의 성향별 수백 가지의 유형에 따라 죽은 후에는 같은 동일유형의 심성장의 무리()=에 속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생명체의 심성장은 각기 자기의 파동(波動)과 파장(波長)’을 가지고 있음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죽은 후의 심성장은 자기의 파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유사한 파장(波長)의 무리()인 떼에 편입이 됨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이라는 생애인 이승의 금생(今生)’은 주로 색()차원의 물리화학적인 사상계(事象界)에서 전개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죽은 후의 생애인 저승이라는 내생(來生)인 현택(玄宅)’은 공()차원의 의식계(意識界)에서 전개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생애인 이승이 양()의 생명계라고 한다면 인간이 죽은 후의 생애인 저승은 음()의 생명계라고 말할 수가 있음이다.

 

이같이 모든 생명체는 대우주 내에서 대우주가 사멸(死滅)할 때까지 ()인 저승의 생명계()인 이승의 생명계2가지의 생애를 되풀이해 반복하고 순환하면서 영속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런 2가지의 생애의 균형과 조화를 모색해 모두 다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뭔지 발견하고자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생명체·인간·지구·우주는 모두가 대우주의 공간 내에서 생장염장(生長斂藏)운동을 쉼 없이 하면서 ()=이승의 생명계()인 저승의 생명계를 반복해 되풀이 하듯 윤회(輪廻)하면서 진화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주장한다면 잘못일까? 결과적으로 이승(今生)의 운명과 저승(來生)의 운명은 상호 밀접하게 연동되어 윤회한다.’고 하면 얼마나 믿을까?

 

지구의 124절기에 우주를 한번 비유해 보자면 현재 우주의 계절은 무더운 한여름인 말복(末伏)을 막 넘기는 시점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예컨대 송()대의 도()학자였던 소강절 선생은 우주(天地)의 시간단위지구의 시간단위를 다음과 같이 비교하였다.

 

우주의 1()은 지구의 129,600년에 해당하고

우주의 1()은 지구의 10,800=‘129,600÷12에 해당하며

우주의 1()은 지구의 360=‘10,800÷30에 해당하고

우주의 1()는 지구의 30=‘360÷12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이같이 우주의 시간단위가 지구의 시간단위에 비해 그 사이즈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우주의 시간단위는 과연 얼마나 더 클지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글은 살아생전의 이승의 운명과 운세도 중요하지만, ‘죽은 후에 진행될 저승의 운명과 운세도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하는 의도에서 정리해보게 되었다는 점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nbh1010@naver.com

 

/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미래문제·자연사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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