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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와 운명, ‘막힌 운(運)’을 여는 개운(開運)❷
운명은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불가피한 필연의 힘이다
기사입력: 2020/06/26 [08:20] ㅣ 최종편집: 나눔뉴스.
노병한 칼럼니스트
▲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사주산책]팔자와 운명, ‘막힌 운()’을 여는 개운(開運)에서 계속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자연이 물리적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늘날 현대인들은 아무도 이를 명()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이 얼마든지 도전하여 극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 이를 운()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사(生死)라는 문제가 걸린 죽고 사는 문제라면 어떨까? 의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까지도 생사(生死)의 문제만은 아직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아직도 현대의술로도 못 고치는 불치의 질병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생명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도 나와 있지 않음이 현실이다. 동양명의로 이름이 높았던 편작(扁鵲)도 죽음의 앞에는 두 손을 들라고 했듯이 아마도 생과 사는 영원히 조물주의 몫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생사야 말로 진정한 명()을 표현하는 명제가 아닐까?

 

목숨을 뜻하는 용어에는 명(생명(生命수명(壽命단명(短命연명(延命운명(殞命)이라는 말들이 있다. 여기서 운명(殞命)이란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인간의 생사를 주재하고 주관함은 오직 하늘이라고 여겨 천명(天命)이라고 위안을 할 수도 있다. 또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여겨 사람이 죽고 삶은 모두다 하늘의 뜻이라며 장수(長壽)와 요절(夭折)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이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죽음(殞命)을 보면 삶이 보인다. 인생의 밑그림은 역설적으로 어떻게 죽는가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전생(前生)을 인정하는 서양사회나 윤회(輪廻)를 받아들이는 동양사회의 삶과 죽음에 대한 입장에서 본다면, 죽음은 삶의 끝이지만 새로운 영혼의 삶의 시작일 것이니 말이다.

 

다섯째 인과응보의 법칙을 알면 운명도 바꿔 입명(立命)할 수가 있다. 운명은 숙명이 아니며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변화될 수 있다. 이러한 이치를 상세히 밝혀준 책이 있다. 바로 중국 명대의 원료범(袁了凡)이 쓴 음척록(陰瘠碌)이다. 이 책에서 그는 운명론을 인정하나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에 따라 주어진 운명도 변할 수 있다는 개운(開運)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원료범의 가정은 대대로 의술을 가업으로 삼는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손에서 길러졌다. 가업을 이어 의학을 공부하던 소년 시절에 갑자기 한 노파가 와서 자신은 역학을 공부하는 사람인데 천명(天命)을 쫓아 소년에게 역학의 진수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노파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께서 이 아이를 의사로 만들려고 하시겠지만 이 아이는 그 길을 걷지 않을 겁니다. 성장하면서 과거시험을 봐서 관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몇 살에 어떤 시험을 보고 몇 명중에 몇 등으로 합격할 것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젊은 나이에 지방장관이 되어 크게 출세할 것이라는 것이며,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없을 것이라는 것과, 53살에 죽을 것이라는 것 등 소년의 운명을 하나하나 모두 예언했다.

 

그 후 원료범의 인생은 모두다 이 노파의 예언대로 되어갔다. 그리고 지방장관이 된 원료범이 어느 날 고명한 노승이 있는 선사를 찾아 좌선에 들어갔다. 무념무상의 훌륭한 좌선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노승이 물었다. 한 점 구름 없는 훌륭한 좌선이 구나? 대체 어디서 수행을 하였는가?

 

원범은 수행경험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하며 소년시절에 만난 노파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그 노파가 말한 대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53살이 되어 죽는 것도 나의 운명이겠지요. 그러니 지금 와서 달리 생각하거나 고민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노승은 원료범에게 호통을 쳤다. 젊어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인가 했더니 완전 바보였구나. 운명 하나만 따라 가는 것이 인생인가? 운명은 하늘이 내린 것이지만 결코 인위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부동의 것도 아닌데 말이야!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일을 하면 자네의 인생은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 더욱 훌륭한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들려준다.

 

노승께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말해준 것이다. 원료범은 그 말을 받아들여 이후 나쁜 마음가짐을 거두고 선행을 쌓으며 살았다. 그 결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자식도 얻어 후사를 이었고 수명도 예언되었던 나이인 53세를 훨씬 넘긴 천수를 다하였다.

 

이처럼 하늘이 정한 운명도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음이다. 그러므로 좋은 생각과 행동을 쌓아감으로써 인과응보의 법칙이 살아나고 그에 따라 우리는 운명으로 정해진 것 이상의 좋은 인생을 살 수가 있음이다. 이러함을 입명(立命)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섭리나 법칙을 현실에서 믿는 사람은 별로 드물다. 오히려 비과학적이라며 비웃는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근대적 지성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운명을 미신으로 치부하고 인과응보의 법칙을 나쁜 짓을 하면 당연히 벌을 받는다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도덕적인 방편으로 왜곡하고 있음이니 한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현대과학의 수준으로 그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한 힘의 존재를 증명할 길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만약 좋은 행동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즉각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의심없이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여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인이 즉각적으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음이 현실이다. 오늘 행한 좋은 일이 곧장 내일의 좋은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도 드물다. 또한 ‘1+1’의 해답이 정확히 2인 것처럼, ()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 바로 갑()이라는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인과관계가 명료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매우 적다.

 

그러함의 이유는 운명과 인과응보의 법칙은 서로 씨실과 날실을 이루어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실과 날실의 2가지는 서로 간섭을 하는 관계이다.

 

예컨대 운명·운세적으로 매우 나쁜 시기에 약간의 선행을 했더라도 운명·운세의 힘이 그 선행을 상쇄해 없애버린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운명·운세가 아주 좋은 시기에 약간의 악행을 하더라도 악행을 상쇄해 없애버린다면 나쁜 결과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운명(darma)이란 숙명이라는 하나의 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풀어가기 위한 도구이다. 1년에는 4계절이 있고 24절기가 있다. 이처럼 운()이 계절이자 절기라고 표현을 해본다면 잘못일까?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인간의 뜻과 자유의지가 반영되어 자신이 스스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음이다.

 

운명이란 만들어가는 인연(因緣)과 감정을 나타내는 칠정(七情)에 의해서 쉼 없이 변화하면서 자유롭게 살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의지로 운명을 개척할 수도 쌓아올릴 수도 있음이 아닐까?

 

그러므로 인간에게 운명이라는 게 있지만 결코 바꿀 수 없는 게 아니다. 착한 것을 생각하고 착한 일을 하면 운명을 보다 좋게 바꿀 수 있다. 인생은 자신이 그리는 대로 된다. 그러기에 스스로가 마음에 무엇을 그리는가에 의해 운명과 인생이 달라진다고 할 것이다.

 

마음에 그리는 생각 꿈 희망이나 마음에 품는 철학 이념 이상에 의해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 된다. 그러나 적당히 생각하고 막연하게 그리는 게 아니라 강렬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생각하되 필사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공부든 일이든 사업이든 정치든 조금 노력하다 잘 안 되면 거기서 주저앉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끈질기게 그것도 이제 이 이상은 더할 수 없다는 경지까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경지에 도달하면 반드시 신의 선물이나 계시라고 여겨질 만큼 멋지고 큰 행운을 맞이하여 필요한 힌트를 발견하거나 도와주는 후견인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법이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운명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하늘과 땅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이 움직임에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 있다. 하늘은 땅을 품고(天命) 땅도 하늘을 품고(地名) 있다. 천명(天命)은 인간으로 태어난 자기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使命)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서도 바꿀 수 없다는 천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 인간은 비로소 자신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내 천명은 무엇인가?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동안은 아무리 움직여보아도 모두가 헛일이다.

 

한편 공자는 일찍이 천명(天命덕명(德命녹명(祿命)을 강조하면서 세상 모든 사람이 천명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그 우주적인 법칙에 종속됨으로써 이른바 하늘의 뜻, 즉 천명에 부합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가 생각한 궁극적 완성은 하늘이 내려준 초월적 덕을 우리 몸에 배양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하늘의 뜻에 반항하거나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공자는 부귀는 천명에 매어 있고, 생사는 운명에 매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공자는 천명(天命덕명(德命녹명(祿命)3가지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천()이란 우주만물의 생멸과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주체인 최고신이라 했다. 예컨대 공자는 천명(天命)은 하늘이라는 최고신의 명령이고, 덕명(德命)은 하늘이라는 최고신이 준 도덕적인 사명이며, 녹명(祿命)은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숙명(宿命)이자 녹명(祿命)이라고 했다.

 

공자가 ‘50에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을 때의 천명이 바로 이 3가지를 통칭해서 한 말이었다. 우리가 흔히 성인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은 바로 이런 천명을 깨닫고 그것에 따라서 이 세상을 살다가 가는 존재라는 규정이었음인 것이다. nbh1010@naver.com

 

/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미래문제·자연사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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