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편집 2019.11.20 [03:02]
2018대한민국나눔대상 공모
한류미술대전 공모접수
회원약관
개인정보취급방침
회사소개
나눔뉴스 광고센터
사업제휴안내
회사조직도
청소년보호정책
기사제보
HOME > 노병한사주칼럼 >
노병한사주칼럼
자신을 점유한 자에게 동화(同化)함이 토(土)의 본성
집터(土)는 사통팔달의 팔방미인으로 일정한 방위를 갖지 않아
기사입력: 2014/10/15 [12:09] ㅣ 최종편집: 나눔뉴스.
노병한 칼럼니스트

[노병한의 명당산책]물(水)은 흙(土)의 혈맥이고 식량이다. 흙(土)은 물의 질량에 정비례해서 생명의 부화(孵化)와 삶을 유지할 수 있듯이 내면적인 생기(生氣)와 부(富)를 형성한다. 즉 흙(土)이 물(水)을 얻음으로써 죽음을 면하고 살아있는 생토(生土)로서 생명을 유지하고 살을 찌운다.

목(木)은 토(土)의 옷과 날개로서 외형적인 부귀를 형성한다. 즉 허무하고 쓸쓸한 땅에 생기, 광명, 기쁨, 웃을 심어주고 길러주는 것은 생명의 주인공인 목(木)의 몫이다.

흙(土)이 물(水)로써 만물(木)을 창조한다. 그러나 물(水)을 만물(木)로 변화시키는 것은 태양의 불(火)의 작용이고 능력이다. 빛과 열기를 가진 불(火)은 모든 것을 새로운 물체로 변화시키는 조화의 주인공이다.

▲ 노병한 자연사상칼럼니스트     © 노병한 칼럼니스트


불(火)이 아니고서는 한 톨의 씨앗도 부화시킬 수가 없다. 태양의 화(火)는 만물중생에게 숨을 쉬게 하는 천기(天氣)와 움직이게 하는 생기(生氣)를 제공한다. 그런데 화(火)를 연소시키는 것은 산소이다.

그래서 산소 없이는 숨을 쉴 수도 피(血=水)를 순환시킬 수도 없는 것이고, 태양 불(火)의 햇빛이 없이는 생기와 의욕이 나타나지를 않음이 자연의 이치이다. 모든 것은 물(水)이 있기에 먹고 살 수 잇음이며, 불(火)이 있기에 운동하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대지인 토(土)는 이러한 물(水)과 불(火)의 결합을 주선하고 그들의 씨앗을 잉태하고 부화시켜서 길러 양육시키는 자궁과 유방의 역할을 할 뿐이다. 오행 중에서 수화목금(水火木金)은 동서남북에 각각 정해진 일정한 방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토(土)는 일정한 방위가 없다.

그래서 남는 공간이 중앙뿐이므로 중앙토(中央土)라고 하지만 실제로 토(土)는 동서남북을 막론하고 고루 분포하여 모든 방위의 공간에 가득 차 있음이다. 즉 동방에는 목(木)과 통하는 춘토(春土)가, 남방에는 불(火)과 통하는 하토(夏土)가, 서방에는 금(金)과 통하는 추토(秋土)가, 북방에는 물(水)과 통하는 동토(冬土)가 되어서 함께 공존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토(土)는 동서남북과 수화목금의 모두에 서로 통하는 사통팔달의 팔방미인격에 해당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토(土)는 겉으로 보기에는 모가 없이 무척 둥글둥글해 원만하고 능소능대해 보인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토(土)의 실제는 마치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하는 것처럼 여기에 붙었다 저기에 붙었다 하는 것과 같이 쓸개, 중심, 지조, 주체성 등이 없음이 그 본성이라 해야 바른 해석일 것이다.

그래서 오행 중에서 토(土)는 번지와 소속이 어느 한 곳에 특정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적응하고 순응하는 성질을 타고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토(土)는 누가 자기를 점유하고 무엇에 어떻게 쓰든지 상관하지 않고 순응을 함이 특징이다.

예컨대 토(土)는 농부가 전답으로 쓰든 말든, 군왕이 도읍과 궁전으로 사용하든 말든, 그리고 기업가가 공장과 상업용 건물로 쓰든지, 장사꾼이 장터나 놀이터로, 군인이 싸움터 등으로 사용하든 말든지 간에 그대로 순응할 뿐인 것이다.

즉 토(土)는 자기라는 주체성과 오장육부를 떠나서 오로지 자기 자신을 점유자에게 순순히 따르고 동화(同化)하는 것이 토(土)의 본성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토(土)의 본성은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동화력이 있으며, 임자가 누구이건 가리지 않고 주인의 뜻에 따라 순응하고 적응할 뿐이다. 그러므로 토(土)는 반항을 좋아하지 않고 배반은 더 더욱 싫어하며 오직 믿고 사는 신의(信義)를 좋아하기 때문에 토(土)의 본성을 신(信)이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신의는 군신 간에 또는 주객간의 신의가 아니고, 점유자와 환경에 대한 신의인 것이다. 그래서 토(土)는 주인이 바뀌고 환경이 변하는 것에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는다.

토(土)에게는 오직 지금의 현실이 있을 뿐이기에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土)는 오늘을 위해서 살고 또한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며 견딜 수가 있음인 것이다. 이러함이 바로 토(土)의 본질이고 성정이기에 풍수역학에서 집터(土)는 사통팔달의 팔방미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nbh1010@naver.com

□글/노병한〈박사/자연사상칼럼니스트/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M:010-5248-1010〉[노병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관련기사목록
[토의 본성, 동화, 동화력, 신의] 자신을 점유한 자에게 동화(同化)함이 토(土)의 본성 노병한 칼럼니스트 2014/10/15/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이미영 전영록, 입 열었다
주간베스트 TOP10
  회원약관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나눔뉴스 광고센터사업제휴안내회사조직도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 기사검색

제호 : 나눔뉴스 / 등록번호 서울아00383 / 등록일자 : 2007년6월14일 / 회사명칭 : (주)나눔뉴스 / 회장 편집인: 최종옥ㆍ발행인: (주)나눔뉴스 박윤숙 / 발행소(주소) : 서울시동작구서달로12가길19(흑석동 2층) / 발행일자: 2007년 06월14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종옥 / 사업자등록번호 108-86-01573 / 통신판매업신고 제19-5494 / 관리대표자 광고 및 사업제휴 이메일 / cjo57@nanumnews.com / 본 사이트에 게재된 모든 기사와 사진 등의 판권은 본사가 소유하며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복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나눔뉴스 총괄사업본부(행사와 사업제휴 및 광고문의) 전화 02-713-3535